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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캐나다 오카나간은 포도가 익어가는 '와인의 고장'이다. 밴쿠버의 저녁을 향기롭게 채우는 와인들은 대부분 오카나간 태생들이다. 깊은 가을에 찾는 오카나간 호수는 햇빛을 머금은 채 은은한 아로마 향을 뿜어낸다.

[글 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100여개 포도밭 따라 '와인 트레일'

호수를 품은 오카나간 밸리는 캐나다 와인의 숨은 보고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의 밴쿠버에서 오카나간까지는 400km, 동쪽으로 차를 타고 달리면 5시간의 여정이다. 남북으로 100km뻗어 있는 오카나간 호수는 따사로운 햇살 아래 포도밭 세상을 펼쳐낸다. 포도밭 너머 소담스러운 와이너리들이 늘어서 있고, 호수의 물결은 잔 비늘처럼 반복된다. 여기에 곁들여지는 오가닉 푸드와 과일 농장, 갤러리 등은 오카나간의 풍요로운 도우미들이다. 오가나간 일대의 와이너리는 100여 개를 넘어선다. '와인 트레일(Wine trails)'로 불리는 루트를 따라 다채로운 와인농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은 오카나간을 즐기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포도밭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종종 시음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레드, 화이트, 로제, 스파클링 와인부터 언 포도송이로 만들어낸 캐나다 명물 아이스와인까지. 다양한 맛과 향에 대낮부터 정신은 몽롱하고 얼굴은 발그레해진다. BC주 와인은 160여 년 전 오카나간 호숫가에서 처음 출발했다. 이 지역 최초의 와이너리 회사도 1932년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캐나다 와인의 절반가량이 오카나간의 라벨을 붙인 채 각지로 실려 나간다. 오카나간 와인은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일대의 와인과 더불어 캐나다 와인의 큰 지류로 정착했다.

다채로운 테마, 켈로나의 와이너리

오카나간 밸리의 중심 도시는 켈로나다. 켈로나는 이곳 원주민 말로 '회색곰'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오카나간의 명성 높은 와이너리들 역시 대부분 켈로나에 자리했다. 미션힐, 서머힐 등 대표 와이너리들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옆에 고즈넉한 모습으로 풍경에 담긴다. 이곳에서는 와인 시음과 함께 풍미 가득한 식사도 즐길 수 있다. 켈로나의 와이너리 중 포도밭 한가운데 레스토랑이 들어선 '퀘이스게이트 와이너리'는 떼루아(와인 산지의 흙)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는 명가로 손꼽힌다. 포도밭을 가로지르면 호수 옆 야외테이블에서는 와인 잔 부딪치는 소리가 가늘게 울려 퍼진다.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미션힐 와이너리'는 연갈색 교회당과 정원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정원 마당에는 잔디밭이 있고 교회당 뒤쪽으로는 포도밭과 호수가 늘어선 모습이다. 교회당 야외 테라스에서 와인 한 잔 즐기는 아늑한 시간도 마련된다. 와인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서머힐 와이너리는 와인 저장고를 이집트 왕의 피라미드를 축소한 형상으로 지어 놓았다. 피라미드식 저장고는 온도와 와인 맛을 훌륭하게 유지해낸다. 피아노와 촛불이 어우러진 레스토랑에서는 호숫가 노을을 바라보며 그윽한 식사가 곁들여진다. 이밖에 빨간 구두가 라벨인 콘셉트의 와이너리부터 라이브 뮤직을 즐길 수 있는 곳까지, 와인 트레일에서 만나는 와이너리들은 개성도 제각각이다.

유기농 과일농장의 아침 산책

오카나간 일대는 풍요로운 과일 산지로, 캐나다의 '과일 천국'으로 일컬어진다. 여행의 대부분은 도심에 숙소를 잡고 와이너리 외에 과일 농장들을 두루 둘러보는데 할애된다. 와인 트레일 탐방이 늦은 오후의 프로그램이라면 이른 오전에는 과일 농장 방문으로 하루를 열게 된다. 농장에 들어서면 트랙터를 타고 다니며 즉석에서 신선한 과일을 따먹기도 한다. 이곳의 사과, 복숭아, 배, 토마토 등은 유기농 친환경을 표방한다. 켈로나의 과일 가게, 농장들은 대를 이어 꾸려온 곳들이 대부분이다. 100년 역사의 '페인터 과일가게'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스트 켈로나 사이다 컴퍼니'에서는 과일 재배뿐 아니라 사과 사이다, 과일 아이스크림 등을 접목해 새로운 맛을 선사한다. 오카나간 지역의 과일 향연은 체리, 살구, 복숭아, 사과, 자두, 포도 등 여름과 가을에 걸쳐 풍성하게 이어진다. 수확 시기에 맞춰 마을 페스티벌도 함께 열린다. 과일 향에 취해 곳곳에 들어선 아트 갤러리와 부티크숍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호숫가에서의 하루는 빠르게 흘러간다.

오붓한 호숫가 도시, 펜틱튼

오카나간의 와인 루트를 따라 남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펜틱튼으로 이어진다. 펜틱튼에서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펼쳐진다. 호수를 가로질러 광물자원을 수송하던 케틀 벨리의 철도는 하이킹 코스로 변신했다. 하이킹 코스는 오카나간 호수를 따라 수십km를 이어진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와인 제조장과 과일 농장들은 더딘 속도로 스쳐 지난다. 오카나간 호수와 스카하 호수를 연결하는 운하에서는 래프팅, 서핑 등의 체험도 가능하다. 펜틱튼의 가을은 켈로나보다 한결 더 오붓하다. 시내에는 예전 증기선을 개조한 박물관이 한가롭게 이방인을 맞는다. 펜틱튼의 커버트 농장은 유기농 과일과 오가닉 와인으로 단출하게 손님을 맞는다. 펜틱튼의 농장들은 가을이면 핼러윈을 맞아 주황색 호박으로 단장을 한다. 오카나간 밸리에서는 와인 축제가 사계절 이어진다. 봄·여름축제 때는 세계와인과 야외뮤지컬을 감상할 수 있으며, 가을축제는 포도수확 등의 체험이 곁들여진다. 1월에 열리는 겨울축제 때는 아이스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오카나간에서 밴쿠버로 향하면 BC주의 가을 향은 곳곳에서 은은하게 묻어난다. 오카나간 초입의 작은 마을 '호프'의 맥도날드와 주유소 간판 로고는 붉고 선명한 단풍색이 도드라진다. 코퀴할라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도열하고, 스탠리파크의 도심 숲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다. 산지의 '떼루아'를 직접 밟은 뒤 도시에서 음미하는 오카나간 와인 한 잔은 여행의 피로를 다독이는 추억을 만들어낸다.

[TIP] 지구를 생각하는 오카나간 여행

플라스틱 Zero

캐나다 여행 때는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캐나다는 정부 차원에서 플라스틱 이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은 전면 금지된다. 매년 캐나다에서는 300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자체별로 비닐봉지, 일회용 플라스틱을 규제하는 정책은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실시 중이다.

친환경 무공해 재배

켈로나의 과일 농장에서 맛보는 과일들은 대부분 친환경, 무공해를 표방한다. 주말 마켓에서는 현지 과일의 경우 농약 걱정 없이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와인 역시 대량생산보다는 오가닉 와인을 선보이는 와이너리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화학비료,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 키운 포도로 오가닉 와인을 내놓는 소규모 와이너리 농장을 방문할 수 있다.

도시텃밭 프로젝트

오카나간이 속한 BC주에서는 도심 거리를 거닐어도 농가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도시텃밭 프로젝트가 활성화돼 있어 인도 변, 공원, 학교 등에서 농작물이나 화훼류 등이 재배된다. 친환경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재활용품으로 단장된 '커뮤니티 가든'에서 휴식을 취하는 현지 주민들과도 흔하게 마주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