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그리스 미코노스, 산토리니는 에게해의 푸른 바람이 머물다가는 섬이다.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흰 담장들은 짙푸른 바다와 묘한 조화와 대비를 이룬다. 붉고 파란 교회 지붕의 골목을 배회하는 것만으로 깊은 로망에 빠지게 된다.
[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미코노스 골목에서의 기분 좋은 방황
미코노스는 에게해 키클라데스 제도를 이루는 220여 개 섬 가운데에서도 오붓하고 탐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섬이다.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이미 시작이다. 그리스 전통식당인 타베르나에서 때늦은 점심을 즐기거나, '그릭 도어'로 불리는 파란 대문 계단에 걸터앉아 사색에 잠겨도 좋다. 낯선 섬에 깃든 전설은 신비롭다. 섬 일대는 제우스와 거인들의 전쟁터였고, 헤라클레스가 신들의 골칫거리인 거인을 바다에 던지자 거인은 바윗덩이로 변해 미코노스섬이 되었다고 한다. 델로스 왕의 아들인 영웅 '미콘스'의 이름을 따 미코노스로 불린다는 사연도 섬마을에 전해 내려온다. 여객선이 들어서는 미코노스 항구 옆으로는 아늑함이 느껴지는 마을 호라가 자리한다. 새벽에는 어시장이 서고, 펠리컨이 자맥질하는 마을 뒤편에는 섬의 상징이 된 풍차가 느리게 돌아간다
뜨거운 파티가 펼쳐지는 반전의 섬
미코노스는 축제의 섬이다. 섬은 계절과 밤낮에 따라 거리 풍경을 바꾼다. 에게해의 강렬한 태양이 고개 숙인 밤이 찾아들면 곳곳에서 파티가 열린다. 만토광장 인근의 클럽들을 기점으로 다운타운의 바들은 밤새 문을 열고 새벽까지 흥청거린다. 유럽의 청춘들이 미코노스로 달려오는 이유 중 하나가 축제의 밤에 매료돼서다. 미코노스를 오가는 버스들도 성수기 때는 자정 너머까지 운행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피부색과 국적의 파티 피플들이 새벽 골목을 서성이는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 미코노스의 들뜬 기운은 해변으로까지 이어진다. 플라티 얄로스비치, 파라다이스비치 등에서도 흥겨운 파티는 멈추지 않는다. 플라티 얄로스 포구 앞에는 비치로 향하는 전용 보트들이 가지런히 정박돼 있다. 미노코스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그의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에는 집필을 위해 머물렀던 미코노스에서의 삶이 낱낱이 그려져 있다. 하루키는 미코노스에 머물며 '이 섬을 여행한다면 여름이 좋다. 호텔이 만원이고, 근처의 클럽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어도 여름의 미코노스는 굉장히 즐겁다. 그것은 일종의 축제'라고 적기도 했다.
화산 절벽에 들어선 산토리니 마을
어촌마을이 해변을 따라 낮게 자리한 미코노스와 달리 산토리니는 화산이 터져 생긴 절벽 위의 집들이 가파르게 다가서 있다. 피라, 이아 등 산토리니를 대표하는 마을들은 절벽에 다닥다닥 늘어선 골목과 가옥 등으로 이 섬만의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수천 년의 화산폭발로 인해 산토리니는 지금의 초승달 절벽 모양으로 빚어지게 됐다. 섬을 가라앉게 한 화산은 전설을 만들고 신화를 끌어들였다. 이오니아, 시실리아인들은 바닷가에 도시를 세웠고, 산토리니에서는 고대 키클라데스 문명이 번영했다. 그리스인들은 오랜문명과 침몰을 이유 삼아 산토리니를 전설 속에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로 믿고 있다. 산토리니의 어느 항구에 내려도 여행자들은 일단 중심가인 피라에 집결한다. 당나귀가 오르내리는 옛 항구를 시작으로 피라의 골목들 은 복잡하게 늘어서 있다. 화산섬인 산토리니에서 당나귀는 절벽 아래 항구와 절벽 위 마을을 이동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구 항구를 오르내리는 당나귀는 케이블카가 들어서면서 관광용으로 바뀌었지만, 케이블카 업주는 일부 수익을 당나귀 마부들에게 지급해 공존하며 살아간다.
에게해를 물들이는 '이아의 석양'
해 질 녘이 되면 여행자들은 섬 북쪽의 이아로 모여든다. CF나 엽서를 통해 알려진 산토리니의 멋진 풍광은 대부분 이곳 이아마을에서 새겨진 것들이다. 화산이 터져 절벽이 된 가파른 땅에는 하얗게 채색된 수백 채의 집들이 붙어 있다. 바다 너머 작은 섬 위로 해가 지면 붉은빛은 해변을 물들인 뒤 하얀 마을 위에 내린다. 그곳에 풍차가 있고, 교회당이 있고, 어깨를 기댄 연인들의 가녀린 입맞춤이 있다. 산토리니에서는 분화구를 일주하는 투어에 참가하거나 페리사, 카마리 비치 등 해변을 찾을 수도 있다. 뜨거운 햇살아래 포도 향 가득한 그리스 술인 '우조'를 마셔도 좋다. 화산지형의 비옥한 땅에서 나는 산토리니 와인 역시 제법 명물에 속한다. 에게해의 섬들은 6~8월이 성수기다. 5월과 9월의 산토리니는 절반은 저렴하고 두 배는 한적하다. 섬은 가을을 넘어서면 을씨년스럽고,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과 함께 상가들이 문을 닫기도 한다. 에게해의 섬이 간직한 풍광과 유적들은 아테네로 접어들면 깊이가 달라진다. 수도 아테네는 섬들로 향하는 기점이자 오랜 그리스 문명의 보고다. 세계문화유산인 아테네의 우윳빛 건축물들은 언덕 위에 솟아 있고 아크로폴리스 일대에는 그리스 유산의 백미인 파르테논, 제우스 신전 등이 가지런하게 정렬해 있다. 섬에서 느꼈던 향취와는 또 다른 깊은 충만감이 골목 어귀마다 소담스럽게 담긴다.
지구를 생각하는 에게해 섬 여행
물 절약과 쓰레기 회수
산토리니를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물 부족과 쓰레기는 섬의 골칫거리가 됐다. 지난해에는 크루즈선 승객의 하루 하선 인원을 8천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섬 내에 담수 공장들을 세워야 하는 실정이다. 섬을 여행할 때는 물을 낭비하지 않고, 쓰레기는 섬 밖으로 되가져가는 실천이 요구된다.
골목길은 보행자 전용거리
미코노스의 다운타운은 미로 같은 골목길로 명성이 높다. 이 골목길들은 보행자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일반 차량이나 모터바이크 등은 골목길을 이용할 수 없다. 보행자 전용거리를 위해 버스 터미널 역시 다운타운 북쪽과 남쪽에 별개로 구분돼있다. 호젓한 무공해 섬을 만끽할 수 있는 데는 이런 깐깐한 규칙들이 한몫을 한다.
유적 보호를 위한 대중교통 이용
'네포스'라고 불리는 아테네의 스모그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요일제 차량운행은 생활화돼 있으며 홀짝수제 운행을 하기도 했다. 스모그가 고대 유적들을 빠른 속도로 침식하자 고고학자들은 아크로폴리스에 유리 덮개를 씌우는 것을 검토한 바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세계유산인 아테네의 유적 보호에 일조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