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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몸무게와 같은 수치로는 결코 측정될 수 없다." 미국의 모델 겸 배우인 자밀라 자밀(Jameela Jamil)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자기 몸 긍정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셈이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트렌드인 이 개념은 단순히 살찐 몸을 방치하고,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자는 뜻이 아니다. 몸을 갑갑하게 조이던 코르셋과 외모에 관한 억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사랑하자는 것이다.
[글 성소영 자료 [2019 대한민국 트렌드], [아름답지 않을 권리] 등]
생각이 변한다, 지금의 내 몸을 사랑하자
'자기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자기 몸 긍정주의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자매는 10대 때부터 섭식장애를 앓았다. 그녀들은 더 마른 몸매를 만들기 위해 과도한 다이어트에 집착했고, 결국 동생은 36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녀의 언니인 코니소브차크(Connie Sobczak)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같은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1996년에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자기 몸 긍정주의 메시지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이 운동은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이슈가 급부상하고, 외적 코르셋의 주 대상이었던 여성층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SNS를 타고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에는 과체중 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최근에는 단순히 신체사이즈뿐 아니라 인종, 성별, 신체적 특징 등 개인의 외모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외모의 기준은 매번 뒤바뀌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잣대로 우리를 괴롭히곤 한다. 이제 날씬하지 않은 몸매,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 어두운 피부색, 주근깨 등 부정적인 외모 요소로 여겨졌던 것들에서 탈피해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시간이다.
보이는 것이 변한다, 다양한 외관의 모델과 인형들
자기 몸 긍정주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단연 패션계다. 이전까지 패션계에서는 극단적으로 마른 체형을 추구했지만, 이제 런웨이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다양한 외모를 지닌 모델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애슐리 그래이엄(Ashley Graham)'은 XL, XXL 등 큰 사이즈의 옷을 입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녀의 키는 170㎝, 몸무게는 90㎏ 정도로 일반적인 모델의 몸매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수영복, 속옷 패션쇼에 설 때는 셀룰라이트가 그대로 드러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당당히 런웨이를 걷는다. 덕분에 수많은 세계 팬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고 [보그] 커버 역사상 첫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TV프로그램 [도전 슈퍼모델 시즌 21]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고, 지난 2018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선 '위니 할로우(Winnie halow)'는 세계 최초 백반증 모델이다. 백반증은 피부 곳곳에 반점 형태로 색소결핍이 생기는 질환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내내 놀림을 받았지만,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피부를 당당히 드러낸 결과 세계적인 모델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사연은 사회가 정해놓은 아름다움에 당당히 반기를 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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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카다시안과 애슐리 그레이엄 방송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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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 사이즈 쇼핑몰 Panningtons
미국 마텔사는 창립 60주년과 국제여성의 날을 기념해 전세계 수많은 여성을 모델로 해 바비인형을 만들었다.
사람뿐 아니라 인형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 마텔(Mattel)사의 '바비인형'은 1959년부터 항상 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바비인형 몸매', '살아있는 바비인형'이라는 표현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칭찬하는 대명사로 쓰이곤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표현이 더는 적합하지 않을 듯하다. 2016년부터 마텔 사에서는 통통하거나 키가 작은 체형의 바비인형도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형의 몸매뿐 아니라 피부색, 눈동자 색, 머리카락 색 등 신체의 여러 부분에 다양성을 더했고, 직업이나 장애 여부를 반영하기도 했다. 바비인형의 이러한 변화는 실제 패션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상당히 비슷하다. 외모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하자, 인형의 외모까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입는 것이 변한다, 예쁜 옷보다 편안한 옷
외모에 관한 생각들이 달라지자 생활에서 쉽게 대하는 물건들도 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를 겪고있는 것은 바로 의류다. 불편해도 예쁜 옷보다는 단순하더라도 편한 옷을 찾는 트렌드가 형성된 것이다. 브라렛은 이런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품이다. 브라렛은 편안한 착용감을 강조한 브래지어의 일종이다. 기존 브래지어와 달리 와이어, 패드, 후크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해 편안함을 높였다. 실제로 소셜 커머스 티몬에 따르면 브라렛 판매량은 2018년 상반기에 전년 대비 3,049%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옷을 선택하는 기준이 얼마나 확연히 바뀌었는지 알 수 있는 수치다. 외국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패션브랜드인 아메리칸이글의 속옷 브랜드 '에어리'는 편안한 속옷을 추구하며 다양한 인종과 체형의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게다가 모델들의 몸매를 전혀 보정하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으로 화보를 찍었다. 에어리의 이러한 콘셉트는 성공적이었고 2018년 1분기 매출액은 전년보다 38%나 상승했다. 섹시한 콘셉트와 마른 모델들로 유명한 '빅토리아 시크릿'의 북미 매출액이 2018년에 5%의 하락세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인상적인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