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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사업가’와 ‘기업가’는 다르다. 사업가는 모방을, 기업가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방은 이른 시간 내에 경쟁자만큼의 목표를 달성하기에 유리하지만,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성장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적이다. 경제나 산업은 물론이거니와 종(種)으로서, 사회로서의 인류 역시 변화 없이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글 김동영 KDI(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
모방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지만, 사실 모방은 본능에 가깝다. 인류의 시작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있지만,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는 명확하다. 부모의 복제를 통해서다. 인류와 동물, 곤충 모두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모방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동시에 자연은 모방만으로 완벽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파트너 혹은 화분 매개자를 찾아 종이 섞여야만 진화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즉, 유성생식을 전제로 한다. 수학적으로 무성생식이 유성생식보다 개체 수를 두 배 더 빨리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종은 유성생식을 한다. 서로의 형질이 섞여 전과 다른 작은 변화가 생겨나고, 이러한 변화들이 쌓여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반면 무성종군의 경우 진화가 느린 탓에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지고 만다. 모든 종류의 변화가 이와 다르지 않다. 변화는 언제나 진보와 성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점진적이다. 경제성장 역시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멈춘 적은 없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렸다. 그렇다고 매 순간 느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사건들이 등장했다. 휴대폰의 발전은 점진적이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은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폭발적인 변화를 ‘혁신’이라고 부른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혁신은 기업가에 의해 창발되는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그들을 ‘길들지 않은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문명의 가장자리로 쫓겨나 지금껏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혁신이 모방의 반대말은 아니다. 폭발적인 변화와 성장을 가져오는 변화도 모방에서 시작된다. 다만 모방이 혁신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현상이 본질의 재구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론 머스크의 재활용 로켓은 모방이 본질의 재구현으로 어떻게 혁신으로 이어지는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늘날 로켓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두 독일의 로켓 공학자, 폰 브라운에 의해 설계되었다. 3단으로 이뤄진 디자인, 추진체와 연료, 귀환캡슐과 선박을 이용한 회수시스템은 모두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에서 2,754명을 죽인 V-2 로켓도 그의 작품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그는 연합군에 투항했다. 투항 후 16년이 지난 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폰 브라운이 구상한 ‘새턴 5호’는 닐 암스트롱을 무사히 달에 착륙시켰고,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의 우주산업은 그 어떤 국가도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앞서 있었다. 문제는 오늘날이다. 미국의 역량은 당시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화물을 우주로 올려 보내는 비용이 절반가량 감소했지만, 여전히 V-2 로켓 기술이 모방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기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류가 최소 다섯 번의 멸종 사건을 겪었으며, 최근에도 공룡 대멸종이 재현될 만큼 소행성이 지구를 가까운 거리에서 비껴간 사례를 언급하며, 인류를 화성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화성식민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동시에 인류가 지구궤도를 벗어나는 비용이 10분의 1로 줄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 50년간 반복된 방식에서 벗어났다. ‘재활용 로켓’을 고안해낸 것이다. 1단 발사체를 지상 및 무인 바지선에 착륙시키는 방법으로 로켓을 재활용 할 수 있게 되었다(무인 바지선 두 척의 이름은 각각 ‘JUST READ THE INSTRUCTIONS’와 ‘OF COURSE I STILL LOVE YOU’다). 이를 통해 회당 10억 달러가 발생하는 NASA의 우주발사 시스템 대비 90% 이상 저렴한 9천만 달러에 우주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는 재사용 전의 비용이다.
일론 머스크는 페이팔 성공 이후 테슬라, 스페이스X, 솔라시티를 설립했다. 이들 각 회사를 다루는 머스크의 업무 방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본질로 돌아가 재창조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순한 기존의 모방이나 파생과는 달리 본질로 돌아가 당초 의도부터 시작했다. 자동차 역시 이러한 재창조로 탄생했다. 1885년 카를 벤츠가 최초로 2인승 경량 가솔린차를 발명했을 때 경쟁자들은 모두 마차 디자인을 최적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벤츠는 자동차의 본질은 운송에 있음을 깨닫고 내연기관의 기능을 적용해 새로운 탈 것을 만들어냈다. 기본원리로 돌아가 본질을 구현하는 방식을 재설계하자 모방이 혁신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디지털 전환으로 ‘만물의 디지털’화가 가능해진 오늘날 본질의 재창조는 제조를 넘어 서비스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금융이다. 사람들이 은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만족을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새로운 방식으로 충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이 전통적으로 제공하는 만족은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안전하게 옮기며,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능력에서 나온다. 14세기에 뱅킹 서비스가 등장한 이래 오프라인 은행이 이 역할을 담당했지만, 오늘날 이는 모바일 기기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스마트폰으로 은행계좌를 몇 분 만에 만들 수 있고, 스마트폰을 탭 하거나 바코드를 읽어 결제를 할 수 있다. 인터넷 송금이 가능한 국가는 현재 190개국이 넘는다. 금융의 본질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한 국가는 중국이었다. 중국의 비은행권 생태계는 모바일을 활용해 금융의 본질을 재창조했다. 2017년 중국의 모바일 결제 금액은 112조 위안(17조 달러)에 달한다. 같은 해 미국에서 모바일 결제규모는 중국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늘날 중국 모바일 결제의 92%는 유니온페이나 마스터카드, 비자, 스위프트 혹은 중국은행이 아니라 알리페이(앤트파이낸셜)와 위페이(텐센트)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알리페이는 예금을 수납할 물리적 지점이 없지만, 위어바오를 통해 관리하는 자금은 제이피모건체이스의 미국 국고채 마켓 펀드를 제치고 현재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MMF이다. 위어바오는 예금을 수납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채널이 물리적 지점이 아니라 모바일폰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기존 금융서비스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본질로 돌아가 이를 디지털로 재창조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모방은 삶을 영위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고, 다른 사람 역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일론 머스크는 기본 원리에 따라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가장 근본까지 파고든 뒤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혁신이란 기본원리와 본질에서 나온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옷장 속 낡은 옷의 유행이 다시 돌아오듯 언제나 세상은 돌고 돈다. 새로움이라는 포장지에 쌓인 혁신도 이와 같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의미는 혁신의 무용함이 아니라 본질의 중요함을 강조한 표현일 것이다.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이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 본질의 재창조에서 가능해진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