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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 행동]를 옮겼고, 저서로는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등이 있다.
[글 박한선(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매년 1월이 되면 누구나 하는 결심이 있다. '올해는 무조건 살을 빼겠다'는 결심. 작심삼일로 끝나고야 마는 다이어트 계획이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명제라면 어떨까? 결국 식탐에 지고 만 것은 내 의지가 나약한 것이 아니라 인류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신경인류학자 박한선에게 듣는 식탐학개론.
만약 지구상에서 비만이 사라진다면
어느 날 전 세계 비만인이 모두 모여 결의를 했다. 오늘부터는 반드시 살을 빼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세계 각지에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답지했다. 하지만 의외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어찌 된 일일까?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 질환을 치료하던 의사들이 일이 없어 굶어 죽은 것이다. 사람들이 살을 빼려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때문이다. 비만과 과체중은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다. 어느 날 비만이 사라지면 대부분 병원은 문을 닫을 것이다. 물론 치킨집을 비롯한 수많은 식당과 다이어트 회사, 피트니스클럽도 비슷한 운명을 겪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두 번째 '진짜' 이유는 바로 사회적 매력이다. 비만은 '나태'라는 부정적 성향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좋은 평판을 얻기 어렵다. 취업이나 승진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다. 이성 교제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제일 싫어하는 이성의 특징 순위 2위가 비만이다. 바람기 다음이다. 사실 생물인류학적으로 말하면 매력과 건강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날씬하고 매력적인 체형은 애초부터 건강과 직결된다. 매력적인 허리 엉덩이 비율은 낮은 심혈관 장애, 당뇨, 고혈압, 난소암, 유방암, 담낭 질환 등과 관련된다. 여성의 경우 가임률 및 생리주기, 유산율, 조산율 등과 이어지고, 남성의 경우에는 테스토스테론 수치, 즉 남성 호르몬 수준을 잘 반영한다.
굶주림과 싸워온 인류의 절약정신
매력과 지위 그리고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다이어트는 무조건 해야 하는 절대 명제다. 그런데 왜 인간은 번번이 다이어트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일까? 그저 인간의 나약함이라고 자조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사람은, 다이어트 회사 광고 모델을 제외하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성공했다는 사람이 간혹 있었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인류가 지금처럼 풍족한 환경에서 살게 된것은 불과 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수백만년 동안 인류는 늘 굶주림과 싸웠다. 구석기 시대의 조상들은 주로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했는데, 둘 다 녹록한 일이 아니다. 사냥의 성공률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여성은 주로 식물의 열매나 뿌리를 채취했는데, 열매는 사시사철 나는 것이 아닌데다가 뿌리 식물은 땅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서 한참 고생을 해야 얻을 수 있다. 수입이 일정치 않으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를 '절약 유전자 가설'이라고 하는데, 1962년 유전학자 제임스 닐이 제안했다. 즉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살은 쉽게 빠지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살을 빼고 싶지만 몸은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섭취한 영양소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다. 식사량을 줄이면 몸은 '먹을 것이 부족하구나' 하고 오인해 더더욱 근검절약에 박차를 가한다. 운동을 하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대인은 아무리 운동해도, 운동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수렵채집인의 활동량을 넘어설 수 없다. 신체 활동이 많아지면 몸은 다른 쪽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 이를 벌충한다. 이를 '운동의 역설(ExerciseParadox)'이라고 한다. 비만인 중 이른바 '대식가'는 약 2%에 지나지 않는다. 많이 먹어서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 연비가 너무 좋은 몸을 가진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운동량에 비례해 칼로리가 소모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어트하겠다는 당신의 의지보다, 에너지를 절약하겠다는 유전자의 의지가 더 강하다. 칼로리만큼 은 펑펑 낭비해도 좋으련만 우리 몸은 스크루지 영감이다.
먹스타그램, 먹방vs외모 중독 사이
이렇게 성능(?) 좋은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불과 수십 년도 안 된 일이다. TV 등이 등장한 시기와 일치한다. 현대 대중문화는 '지나친 매력'과 '과도한 식욕'이 지배하고 있다. 매력과 식욕은 태곳적부터 인간의 심성을 지배한 힘이지만, 매스미디어는 그 힘을 수천 배로 키웠다. 이제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예쁜 몸'과 '별 세 개'가 달린 미슐랭 등재 식당을 동시에 본다. 굉장히 날씬한 여성이 세계 최고의 식당에서 숨이 넘어가도록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말도 안 되는 역설이다. 요리 대결을 펼치거나 맛집을 알려주는 TV프로그램은 수십 개나 있지만, 좀처럼 인기가 식지 않는다. 심지어 밥 먹는 모습을 돈 내고 보기도 한다. 먹방이다. SNS는 사실상 음식 사진의 경연장이다. 사람들은 식사 전에 감사의 기도, 아니 감사의 인스타를 올린다. 뇌 안의 쾌락 중추는 다양한 자극을 구분하지 않고 활성화된다. 오랜 준비 끝에 시험에 합격할 때 느끼는 '의미 있는' 쾌락과 딸기 케이크를 먹을 때 느끼는 '맛있는' 쾌락 은 동일하다. 최소한 쾌락 중추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직접 먹지 않고도 먹방을 보면 어느 정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들러붙은 살이 흘러내리고 있어도, '포샵처리'를 한 예쁜 모델의 몸을 보면 행복하다. 가짜 행복이다. 곧 허기가 찾아오고, 다시 채워야한다. 먹방 중독과 외모 중독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이다.
다이어트보다 중요한 것
올 새해에도 다이어트가 목표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가 취미가 아니라면, 올해는 목표를 바꾸어보자.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살을 더는 찌울 필요가 없다고 우리몸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편안한 일상, 규칙적으로 먹는 건강한 음식, 충분한 수면, 소수의 깊은 대인관계, 안정적인 이성관계, 적당한 여가 생활이다. 체중, 건강, 매력, 행복. 이 중 무엇이 가장 우선일까? 보통은 체중부터 조절하면 건강과 매력, 행복이 순차적으로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체중부터 잡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심지어 건강과 매력을 해치는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모순도 생긴다. 사실은 그 반대다. 행복한 삶부터 찾으면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행복은 삶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원하는 삶 을 살기 위한 선행 조건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행복한 사람은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설령 좀 통통하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행복하니까.
타인의 시선 속 나를 위로해줄 영화 셋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 감독 | 라이언 머피
- 출연 | 줄리아 로버츠
안정된 생활 속에서도 정신적인 허기를 느끼는 맨하튼 차도녀 리즈. 맛있는 음식을 먹고, 뜨겁게 기도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는 리즈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영화.
아이 필 프리티
- 장르 | 코미디
- 감독 | 에비 콘, 마크 실버스테인
- 출연 | 에이미 슈머, 미셸 윌리엄스
예쁜 사람은 무조건 행복할까? 외모지상주의는 미남 미녀에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프레임이 된다. 불의의 사고(?)로 예뻐져버린 르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겉모습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
원더
- 장르 | 드라마
- 감독 | 스티븐 크보스키
- 출연 | 제이콥 트렘블렝,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주인공 어기는 타고난 안면기형 때문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보다 할로윈을 더 좋아한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어기를 보면서 자신의 용기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