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탄소,
못다 한 이야기 - 이탄

writer과학칼럼니스트
이독실

지금도 탄소는 순환한다.
자연 탄소 저장소인 이탄지(泥炭地)는 전 세계 토양 탄소의 1/3 이상을 저장한다.
모든 식생이 저장한 탄소보다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있지만, 토지 개발로 인해 대기 중으로 탄소가 배출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Extracting a sample from the Congo peatland. ⓒKevin McElvaney/Greenpeace Africa.
식물들의 세포벽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리그닌’이라는 고분자가 있다. 리그닌은 셀룰로오스를 붙잡아 식물의 강도를 증가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3억 년 전, 대부분의 석탄이 만들어진 석탄기에는 이 리그닌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없었고, 당시 육지를 가득 메운 식물들은 죽은 후에도 분해되지 않은 채 켜켜이 쌓여 높은 압력을 받아 탄화되어 석탄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제는 리그닌을 분해하는 미생물들이 있기 때문에 석탄기 당시처럼 식물의 사체가 그대로 탄화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미생물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탄화가 진행되는데, 대표적으로 이탄지(泥炭地)를 들 수 있다.
석탄은 탄화가 된 정도에 따라 이탄, 갈탄, 역청탄, 무연탄의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이탄은 다른 석탄에 비해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석탄화가 더 많이 진행되어 탄소 함량이 늘어나는데, 탄소 함량 60% 미만의 이탄은 보통 지표면에서 채굴되기에 토탄(土炭)으로도 불리는 석탄의 한 종류이다. 석탄화의 초기 단계인 셈이다. 습기가 많거나 얕은 물이 있는 지대에서 식물의 사체가 완전히 분해되지 못한 채 서서히 탄화되면서 만들어지는데, 얼핏 보면 썩어가는 나뭇가지들이 섞여 있는 까만 진흙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쌓인 이탄은 공기와의 접촉이 차단되는 한 천천히 석탄화가 지속되어 일부는 갈탄으로 변한다. 이러한 이탄의 생성과 석탄화는 대기 중 탄소의 순환을 끊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석연료가 일단 채굴되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면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대기 중에 배출되고, 이는 광합성 등을 통해 다시 흡수되기는 하지만 그런 식물의 사체 또한 다시 분해되어 다시 이산화탄소로 대기 중에 순환하게 된다. 식물과 플랑크톤들이 왕성하게 성장하고 번식하는 동안에는 몸에 탄소를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 죽고 분해되어 다시 대기 중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즉, 땅속에 묻혀 있던 화석연료를 일단 채굴해서 사용하면 다시 땅속에 묻는 것은 쉽지 않다. 지구온난화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탄소 농도를 낮추기 위한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기술이 중요한 이유이다.
CCS는 인위적으로 포집한 탄소를 다시 저장하는 기술이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있으나 다시 ‘땅속’으로 돌려보내는 기술을 살펴보면 지하 깊은 곳, 해저, 비어있는 유전 등에 저장하는 방안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안전성이 반영구적으로 보장되냐는 것이다. 단단한 광물의 형태로 땅에 돌려보내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예상치 못한 환경적 영향을 끼치거나 대규모의 재유출이 있는 경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이런 탄소 포집 과정이 일어나는 곳도 있는데 그게 바로 이탄지이다. 식물의 사체가 분해되기 어려운 환경에서 몸속에 탄소를 오롯이 지닌 채 그대로 석탄이 되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리그닌 분해가 불가능해서 식물의 사체가 쌓이는 족족 석탄이 되어버린 석탄기와 그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육지에서 면적비율 3% 이하에 불과한 이탄지에 저장된 탄소의 양은 전 세계 토양 탄소의 1/3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탄소 저장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끝없이 펼쳐진 숲을 막대한 양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저장고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탄지에 저장된 탄소가 모든 식생에 저장된 탄소보다 더 많다.
하지만 탄소 포획의 측면에서 이탄지의 자연 성장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탄은 땅에서 쉽게 채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 셈이니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고, 무엇보다 사실상 늪지대인 이탄지는 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파괴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꼭 이탄을 채굴해서 사용하지 않더라도 늪지대 개간을 위해 물을 빼는 것만으로도 석탄화 과정 중의 이탄이 그대로 분해되면서 탄소를 대기 중으로 되돌리게 된다. 즉,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탄지 보존은 물론 이탄지 복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탄지 복원은 효율적인 이탄화탄소 포집원의 개발에 상응할 정도로 중요하고 효과적인 정책이다. 이탄지 개발을 위한 배수를 중단하는 것만으로 복원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이탄지의 성장 속도는 매우 느리다. 파괴하는 속도는 이에 비할 수 없이 빠른 것을 고려하면, 무엇보다 이탄지의 파괴를 중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은 이탄지의 자연 복원을 통해 서서히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하겠지만 단시간에 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복원은 복원대로 진행하되, 무엇보다 더 이상의 파괴를 막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탄지의 파괴는 개발과 연료 사용에 기인한다. 만약 인류를 위해 이탄지의 파괴를 제한하도록 하려면 그로 인한 손해의 보전도 필요한 셈이다. 인류 전체가 누리는 혜택을 위한 대가를 일부 지역과 국가만 지불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탄지 개발을 제한하자는 주장은 탄소 배출의 주범인 석유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석유 채굴을 중단하라는 주장과도 같다. 석유 채굴을 중단하기는커녕 석유의 공급가를 인상하는 것조차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현대 산업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석유 생산량 제한은 제안하는 측도, 받아들이는 측도 없을 것이다. 이탄지도 석유와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보호·복원 노력에 보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값싼 연료를 위해 이탄을 말려서 사용해야 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탄지를 개발해야만 하는 나라들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정부가 서울 면적의 약 3배에 달하는 땅을 논으로 개간하겠다고 했는데, 이 안에 이탄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최근 콩고민주공화국은 이탄지를 경매에 내놓았다. 문제는 이런 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탄지 보호를 위해서라면 우리 모두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발뿐 아니라 환경 변화에의 취약한 이탄지의 특징으로 인해 이미 많은 이탄지가 훼손되어 사라져가고 있다. 이탄지는 기후변화에 민감한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상기후가 부쩍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탄지는 분해가 중단된 채 석탄화가 진행되는 특수한 환경이 필요하다. 특히 습지 등 적당한 수준의 수분이 필요한데 만약 습도가 달라지고 건조하게 되면 이탄 생성은 중단되고, 심지어 이미 생성된 이탄의 분해가 촉진될 수 있다. 앞에 언급한 콩고의 이탄지도 이런 위기인데 만약 지구온난화로 건조한 상황이 지속되면 지금까지 이탄지에 저장된 탄소가 도리어 배출되기 시작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콩고민주공화국의 이탄지에서 최대 300억 톤의 탄소가 대기 중에 배출될 가능성이 있음이 알려졌다. 300억 톤은 전 세계가 3년간 화석 연료를 사용했을 때의 배출량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탄은 석탄의 일종인 만큼 연료로 사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탄지에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특별히 걱정스러운 이유이다. 2015년 인도네시아 보루네오섬에서 발생한 산불은 서울 면적 40배에 달하는 이탄지와 밀림 등을 훼손했다. 산불은 그 해만의, 혹은 인도네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기적으로 큰 산불이 나지만, 문제는 이상 기온으로 인해 이런 이상 산불의 빈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탄층의 화재는 지하의 이탄층을 따라 매우 천천히 번질 수 있으며 화재를 감지하기 어렵기도 하다. 몇 년, 심지어 수백 년에 걸쳐서 계속 타오르기도 한다. 탄소 포집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탄소 중립을 서둘러야 하는 시기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 탄소 포집 기술의 개발에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중 자연 탄소 저장소인 이탄지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매년 이탄지 개간 및 황폐화로 약 13억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세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에 해당한다. 가계 지출이 줄줄 새는데 자산을 늘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탄지의 개간과 황폐화를 막는 일은 물론, 복원에 힘을 써야 하는 명료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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