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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심리학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현대인. 지하철에 가득한 승객들은 다른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인스타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우리의 마음은 온통 '관심'에 쏠려 있다. 내향적인 사람도, 외향적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인간은 모두 관심쟁이다.
[글 박한선 교수]



박한선(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진화와 인간 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등을 썼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 관심의 양

관심을 갈망하는 사람이 있다. 항상 무대의 중심에 있기를 원한다. 방송과 언론은 이들의 꿈이요, 매력과 호소력은 이들이 갈고 닦은 무기다. 이러한 능력의 절반은 처음부터 타고난 것이고, 절반은 스스로 연마해 간 것이다. 작은 말투, 가벼운 제스처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세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존재다. 좌중의 호기심을 받고, 모두를 기쁘게 해주는 연예인이다. 대학 동아리에 처음 들어가던 날을 기억하는가? 처음 본 후배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이것저것 알려주는 선배.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형이자 언니 같다. 하지만 유독 당신에게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관심을 주고, 또 관심을 받는 사람이다. 천 개가 넘는 전화번호와 수천 명에 달하는 팔로워. 이들이 없다면 세상은 훨씬 칙칙할 것이다. 하지만 '관심종자'의 삶이 늘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하루의 기분은 타인의 관심에 따라 결정된다. '좋아요' 숫자가 적으면 마음에도 구름이 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선을 받아야 한다는 절박함. 도발적인 옷차림과 과격한 포스팅을 남발한다. 슬쩍 과장된 거짓말도 하고, 질병이나 불행을 가장하기도 한다. 본인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싸구려 관심에 목을 매는 자신이 한심하지만 도리가 없다. 포만감을 잊은 사람처럼 꾸역꾸역 관심을 삼켜야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옭아매는 쇠사슬, 관심의 깊이

수많은 청중의 값싼 박수보다는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원하는 이도 있다. 이런 관심이라면 '좋은' 관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관심쟁이라기보다는 진정한 관계를 추구하는 좋은 느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이들은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 말을 먼저 거는 일도 드물다. 간혹 먼저 말을 걸 때는 정말 며칠을 고심한 것이다. 외톨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인공도 아니다. 진지한 태도로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얻기 원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는 조용하지만 카톡과 메시지는 가득하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깊은 대화를 나누기 원한다. 그러나 깊은 관계라고 늘 뜨거운 열정과 농밀한 사랑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천 명의 페이스북 친구를 둔 사람이라면 수십 명쯤 없어져도 괜찮다. 조금 힘들지만 곧 채워질 것이다. 사실 누가 자기 페친인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소수의 관심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한 명 한 명에게 지나친 신경을 쓰기 때문에 늘 관계에 지쳐있다. 가까운 사람과 서로 반쯤 섞인 정서로 살아간다.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점점 가까운 이와 자신의 경계가 흐려진다. 기분과 생각, 판단마저도 어디까지가 남의 것이고, 어디부터 자신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삶의 작은 결정이나 큰 인생의 방향을 모두 소수의 사람에게 내맡긴다. 이런 태도는 점점 주변 사람을 질리게 한다. 부담감을 느낀 상대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마치 세상을 잃은 듯 큰 낙심에 빠진다. 울며불며 매달리기도 하고, 스토커처럼 쫓아다니기도 한다. 한두 번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점점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급기야는 자신을 착취하는 사람과 병적인 관계에 빠진다. 불평등한 관계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관심 과잉

인류학자 로빈 던바에 의하면 털 고르기를 통한 유대 관계는 언어로 진화했다. 일대일의 관계는 점점 일대다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발전했다. 말을 하면 한번에 여러 명과 유대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음성 언어는 문자 언어로 발전했다. 편지를 쓰면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을 수 있다. 책을 쓰면 수많은 독자의 기나긴 관심을 받을 수 있다(모든 책이 그런 행운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신과 전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거쳐 등장한 인터넷은 이러한 관심 추구의 능력을 거의 무한대로 증폭시켰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해도 결국 관계는 질과 양의 절충이다. 수많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해야 한다. 몇 명의 사람과 어느 정도 수준의 관계를 맺을 것인가? 과거 인류가 더 '관심'을 가진 자질은 양적 관심이었음이 분명하다. 어차피 친족 집단과는 원래부터 깊은 관계를 맺고 산다. 그러기 싫어도 도리가 없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먹고 마시고 일하니 말이다. 하지만 수렵사회에서 많은 이의 관심을 받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켰다. 이제 양적인 관심은 제한 없이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누구나 SNS 계정을 만들고,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있다. 느닷없이 인스타 셀럽이 등장하고 파워 유튜버가 나오는 판이다. 달콤한 당이 부족하던 시대에 적응한 우리 몸은 단 것을 갈망하도록 진화했는데, 아무리 갈망해도 단 것을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값싸게 달콤한 음식을 구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대사성 장애를 앓는 이유다. 석기 시대에 적응한 몸이 현대 사회에 영 맞지 않는 것이다. 관심도 마찬가지다.

구석기 시대의 최고 셀럽이라고 해봐야 수백 명의 부족원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정도다. 아마 무리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고, 이성의 선망도 독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버락 오바마의 트위터 팔로워는 8,000만 명이고, 도널드 트럼프의 팔로워는 5,000만 명이다. 수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홍적세의 인류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 세계 사람을 다 합쳐도 수만 명도 되지 않은 시기이니 말이다. 질을 추구하면 어떨까? 보다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현대 사회는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이다. 신석기 혁명 이후 인간은 한 장소에 머물러 살았다. 일터가 곧 집이었다. 가족과는 사실상 온종일 만났고, 이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신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며 분주히 돌아다녀야 하는 세상에서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저녁이 되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도 다들 SNS를 하고 있으니 더 절망적이다.

건강한 관심을 위해서

많은 관심을 받을수록 돈도 벌고 지위도 올라가는 세상이다. 온통 관심받기 열풍이니 뒤처지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조급해진다. 하지만 정말 모든 사람이 관심 레이싱을 해서 승자를 가리는 경주가 우리 인생의 목적일까? 인류는 의사소통과 마음 읽기 능력을 진화시키며 고도로 복잡한 사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하자. 생존과 번영이 목표다. 관심을 얻고 관계를 맺는 것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지만, 그렇다고 먹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먹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나듯 너무 많은, 너무 깊은 관심을 추구하면 탈이 난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어야 한다.

그럼 어느 정도가 적당한 선일까? 정답은 없다. 아마 옛사람의 기준에 참고해보자. 수렵 채집인은 적게는 서른 명, 많게는 삼백 명 정도의 집단을 이루며 살았다. 평균 백 명이다. 대략 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사실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삼백 명 이상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보통 서른 명 정도는 잘 알고 지낸다. 가족과 친지가 한 열댓 명, 그리고 친구나 선후배 등이 한 열댓 명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남는 시간과 노력은 자신에게 쏟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타인의 관심을 얻느라고 정작 자신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하는 현대인이다. 소외당하는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인류는 그렇게 수백만 년을 살아왔고, 이런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관심을 주제로 한 영화 셋

나인스 라이프

  • 장르 : 미스터리
  • 감독 : 알렉산드르 아야
  • 출연 : 제이미 도넌, 사라 가돈

죽음의 고비에서 매번 기적적으로 살아난 한 아이가 9번째 생일날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한다. 벼랑에서 떨어진 아이는 이번에도 목숨을 구했지만 의식불명 상태. 갑자기 사라진 아빠가 용의자로 지목된 가운데, 매혹적인 아름다움으로 주위의 동정을 사는 엄마가 어쩐지 의심스럽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는 판타지같지만 실은 잔혹동화에 가깝다.

나를 찾아줘

  • 장르 | 스릴러
  • 감독 | 데이빗 핀처
  • 출연 | 벤 애플렉, 로자먼드 파이크

닉과 에이미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완벽한 부부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나날은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산산조각이 난다. 에이미가 사라져버렸기 때문. 에이미는 유년시절, 어린이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주인공이었기에 그녀의 실종은 곧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급기야 닉이 그녀를 죽인 살인자로 몰리는 상황이 된다. 과연 그녀는 어디로 간 걸까?

너브

  • 장르 : 스릴러
  • 감독 : 헨리 유스트, 아리엘 슐만
  • 출연 : 엠마 로버츠, 데이브 프랭코

미션을 수행하는 플레이어와 그들의 미션 성공 여부를 배팅하는 왓쳐들이 소통하는 SNS 미션 수행 사이트 '너브'. 평소 소심한 성격이던 '비'는 플레이어가 돼 미션을 성공하면서 엄청난 성금을 얻으며 온라인 스타로 부상한다. 미션은 갈수록 자극적이고 위험해지지만 이미 너브를 통해 SNS 스타가 된 비는 좀처럼 이 위험한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