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의 창고로 들이치는 붉은 바다
자유공원을 가로질러 응봉산 언덕을 내려가면 홍예문을 만날 수 있다. 홍예문이라는 이름은 ‘문의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인 반원형 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응봉산 중턱을 깍아내고 석축을 쌓아올린 아치형 돌문은 홍예문 1길과 2길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돌문은 거대한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보이는데, 돌문 저편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알 수 없어 신비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천 항구와 한국인 촌의 경계지였던 이곳은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조계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한국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을 동원해서 1908년에 완성했다. 그 당시 흙을 나르던 인부 50여 명이 희생되는 사고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인천항과 전동을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이 관문이 생김으로써, 인천항과 그 일대 조계지의 일본인들은 더 빠르게 동인천역 방면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홍예문 주변에는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여름 과일과 빙수, 냉차를 파는 장사꾼들로 붐볐다고 한다. 이 주변에는 청국영사관 회의청, 일본 제1은행 등이 있었다. 지금 홍예문 주변은 상대적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홍예문 앞에 119센터와 철학관과 중국집이 나란히 있는 광경은 돌문 위를 지나간 아프고 기이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교통의 요지였던 이곳에 지금은 오고 가는 차들이 많지 않다. 가장 많이 지나가는 것은 배달 오토바이이다. 행사용 화환을 실은 트럭이 홍예문을 지나가는 것을 우연히 대면한다. 그 순간, 돌문의 저편에 누운 바다, 저녁이면 차이나타운의 붉은 빛으로 몸을 바꿀 그 바다가 그려진다. 붉은 바다는 자유공원 언덕 아래 개항장 문화지구의 유서 깊은 건물들 사이를 흐르고 있다. 오래된 시간의 창고 사이로 언제나 새로운 바다가 들이닥치는 것처럼 말이다.
'참고 문헌'
최희영 《삼치거리 사람들》, 썰물과 밀물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의 교통물류 중심지, 경기 인천》, 경인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