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이 갖추어야 하는 효율성, 공평성, 안정성
사람들은 자신의 예산 아래에서 재화의 가격과 만족도를 고려해 소비한다. 재화의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를 늘리고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득이 고정된 상태에서 재화 가격이 상승하면 실질적으로 소득은 작아지므로 사람들은 기존의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제화의 가격이 소비 규모를 결정하고 생활 수준을 좌우하는 것인데, 이처럼 물가가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물가는 세계 각국 정부에게 주요한 경제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가스 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의 수준을 결정할 때 이 재화가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재라는 점을 고려해 효율성, 안정성, 공평성을 염두에 둔다. 또 공공요금 수준은 공기업의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부담할 사람과 부담 정도를 합의하는 것에 따른다.
하지만 생산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요금 수준이나 과도한 요금 억제는 공급기업의 존재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재정 부담 확대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설비 투자에도 영향을 미쳐 재화의 품질을 저하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세계 주요국은 생산요소의 가격 변화를 공공요금에 즉시 반영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 2022년에 국제 가스 가격이 급등했을 때, 주요국 정부는 물가 상승을 각오하고 요금에 가스 가격 상승분을 반영했다. 영국 정부는 2022년 8월에 가정부문의 가스 요금 상한을 80% 인상했다. 독일 정부는 2022년 10월부터 가스 요금에 부과금을 도입해 가구당 가스 요금이 연간 500유로(약 72만 원) 증가했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로 2022년 12월에 가스회사들의 요금 인상(도쿄가스 289엔, 약 2,600원)을 승인했다.
각국 정부는 요금 인상과 동시에 에너지 빈곤 대책도 고려했다. 영국 정부는 각 가정의 지불 능력에 따른 요금 차등 지원을 더욱 강화했고, 에너지공급기업에 소비자 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도록 요청했다. 독일 정부는 가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 요금액 중 일부를 재정으로 부담하고 가격 상한을 설정했다. 일본 정부는 가스 요금 부담 경감 정책으로 재정을 이용한 가스 가격 급변 완화 대책 사업을 시작했다.
요금 인상은 물가를 올리고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영향력을 낮출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요금 수준 자체를 낮추거나 모든 소비자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절차도 간단하고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을 억제할 수 있지만, 이는 소비자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다. 반면 요금을 국제 가스 가격의 상승에 맞추어 인상하는 방식은 소비자의 부담을 늘리고 물가를 상승시키지만, 가격의 신호 기능을 훼손하지 않아 소비 행동의 변화를 유인하고 소비량에 부합하는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는 금액을 지불하도록 유도한다. 후자의 경우, 정책적으로 소비자 지불 능력을 고려하는 차등 지원을 한시적으로 병행해 국민들의 요금 인상 부담을 선택적으로 완화시킨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들처럼 후자의 방식을 따르는 연료비 연동제가 있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 연료비 연동제가 유보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