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칼럼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
가스 요금 정상화

2022년 국제 가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가스 요금 인상을 승인하거나 상한을 높였지만
우리나라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연료비 연동제를 유보해 가스 요금을 인상하지 않았다.
이는 세대 내 공평성과 세대 간 공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써,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이에 세대 내 및 세대 간 공평성과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가스 요금은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 김윤경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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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의 폐막

우리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는 비용 우위에 따라 분업하고 비용이 더 저렴한 국가에 공급기지를 조성해 생산비용을 낮추었다. 그 결과로 낮은 가격으로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고, 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통합된 공급망을 형성해 상호 의존관계를 굳게 맺어왔다.
그러나 미·중 무역 갈등이 시작되면서 세계가 블록화되어 비용 우위보다는 동맹 여부가 더 중요시되고 있다. 특히 COVID-19 시기, 세계 각국은 자국 우선의 입장을 고수하고 확진자 발생으로 가치사슬의 각 단계에서 조업 중단을 경험했다. 이후 연이어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 대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을 감소시켜 아시아에서의 가스 수급 불안과 국제 가스 가격 인상을 유인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세계는 다시 분열했다. 이는 저비용 생산구조의 폐막을 의미한다. 경제 패러다임이 저물가에서 고물가 기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공공요금이 갖추어야 하는 효율성, 공평성, 안정성

사람들은 자신의 예산 아래에서 재화의 가격과 만족도를 고려해 소비한다. 재화의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를 늘리고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득이 고정된 상태에서 재화 가격이 상승하면 실질적으로 소득은 작아지므로 사람들은 기존의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제화의 가격이 소비 규모를 결정하고 생활 수준을 좌우하는 것인데, 이처럼 물가가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물가는 세계 각국 정부에게 주요한 경제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가스 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의 수준을 결정할 때 이 재화가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재라는 점을 고려해 효율성, 안정성, 공평성을 염두에 둔다. 또 공공요금 수준은 공기업의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부담할 사람과 부담 정도를 합의하는 것에 따른다.
하지만 생산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요금 수준이나 과도한 요금 억제는 공급기업의 존재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재정 부담 확대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설비 투자에도 영향을 미쳐 재화의 품질을 저하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세계 주요국은 생산요소의 가격 변화를 공공요금에 즉시 반영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 2022년에 국제 가스 가격이 급등했을 때, 주요국 정부는 물가 상승을 각오하고 요금에 가스 가격 상승분을 반영했다. 영국 정부는 2022년 8월에 가정부문의 가스 요금 상한을 80% 인상했다. 독일 정부는 2022년 10월부터 가스 요금에 부과금을 도입해 가구당 가스 요금이 연간 500유로(약 72만 원) 증가했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로 2022년 12월에 가스회사들의 요금 인상(도쿄가스 289엔, 약 2,600원)을 승인했다.
각국 정부는 요금 인상과 동시에 에너지 빈곤 대책도 고려했다. 영국 정부는 각 가정의 지불 능력에 따른 요금 차등 지원을 더욱 강화했고, 에너지공급기업에 소비자 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도록 요청했다. 독일 정부는 가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 요금액 중 일부를 재정으로 부담하고 가격 상한을 설정했다. 일본 정부는 가스 요금 부담 경감 정책으로 재정을 이용한 가스 가격 급변 완화 대책 사업을 시작했다.
요금 인상은 물가를 올리고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영향력을 낮출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요금 수준 자체를 낮추거나 모든 소비자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절차도 간단하고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을 억제할 수 있지만, 이는 소비자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다. 반면 요금을 국제 가스 가격의 상승에 맞추어 인상하는 방식은 소비자의 부담을 늘리고 물가를 상승시키지만, 가격의 신호 기능을 훼손하지 않아 소비 행동의 변화를 유인하고 소비량에 부합하는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는 금액을 지불하도록 유도한다. 후자의 경우, 정책적으로 소비자 지불 능력을 고려하는 차등 지원을 한시적으로 병행해 국민들의 요금 인상 부담을 선택적으로 완화시킨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들처럼 후자의 방식을 따르는 연료비 연동제가 있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 연료비 연동제가 유보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세대 내 및 세대 간 공평성을 확보하는 요금 수준

생산비용보다 낮은 가스 요금은 공공요금이 갖추어야 할 효율성, 안정성, 공평성을 모두 낮춘다. 먼저 효율성이다. 낮은 요금에 맞춰 소비량을 결정하므로 가스 소비량이 비효율적으로 결정된다. 요금이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된 생산요소의 가치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므로 소비자들은 가스의 가치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소비하게 된다. 요금이 낮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소비량을 줄일 이유도, 대체에너지를 찾을 필요도 없다.
두 번째로 안정성이다. 요금이 생산비용보다 낮으면 기업은 구매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므로 필요한 가스를 국내로 도입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또 가스 공급 설비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 모두 에너지공급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세번째로, 무엇보다 생산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낮은 요금은 세대 내 및 세대 간 공평성을 왜곡한다.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세대에게 일률적으로 낮은 요금을 적용하므로 현세대 내의 공평성을 고려하지 못한다. 동시에 현세대는 생산비용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가스를 소비하므로 소비량에 부합하는 부담액 중 일부를 미래세대로 이연시키므로 현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공평성을 해친다.
현세대의 선택과 행동은 미래세대의 존재 자체를 좌우한다.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관계는 전자에서 후자로만 가기 때문에 상호적이지 않고 일방적이다. 따라서 미래세대는 자신들의 후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세대의 결정에 참여할 수 없고, 자신들의 후생 저하에 대해 현세대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 현세대는 미래세대의 후생을 배려해 미래세대에 현세대의 부채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

미래세대에 대한 도덕적 책무와 지속가능성

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에 우리나라의 1차 에너지 자급율은 18%(원자력 포함)였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체제가 1차 에너지 중 82%를 수입에 의존한다는 취약점을 보여주는 수치다. 경제 블록화와 지정학적 리스크에 의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일시적이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가정, 산업, 에너지 공기업, 정부가 함께 행동 변화와 기술 혁신 등으로 공평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지금 이상으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현세대 내의 공평성뿐만이 아니라,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의 공평성까지 생각해 장기적 관점에서 부(負)의 유산을 상속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방식과 의사결정을 바꾸어 미래세대에 대한 도덕적 책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