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수소 충전소의 원리
과학, 공학, 그리고 기술

writer과학칼럼니스트
이독실

수소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
수소 충전소
화석연료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수소경제가 꼽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수소를 연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휘발유와 경유를 오가는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생산 방식에서부터 친환경 여부를 따져 색깔로 구분하는데 현재 생산 방식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그레이수소는 ‘정말 친환경인가?’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분자인 기체 수소의 특성상 연료로 활용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기술적 난제들이 많다. ‘수소를 연료전지의 연료로 사용한다’라는 과학적 명제는 간단명료하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공학적/기술적 어려움이 현실로 다가온다.
어려움은 불편으로 치환되고, 불편은 소비자의 지갑을 닫으며, 적자가 뻔히 보이는 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민간 기업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소 충전소에 정부가 50%의 보조금을 주는데도 충전소의 보급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어느 정도 수소경제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눈치 게임이 지속될 것이다. 새로운 충전소가 계획되고 완공되고 운영된다는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조금씩 충전소가 늘어나면서 소비자의 불편은 줄어들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급도 동시에 늘어나며 수소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수소를 공급받는
off-site 방식
수소를 연료로 공급한다는 단순한 명제가 실현되려면 어떤 공학적/기술적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이를 이해하면 수소를 비롯한 기체의 특성도 이해할 수 있고, 때론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잊고 있었던 과학 원리를 다시 기억해낼 수도 있다. 또한 수소 충전소가 극복해야 할 문제를 이해함으로써 지금의 수소경제 상황을 좀 더 바르게 보게 될 것이다.
충전소 내에서 직접 수소를 생산해서 압축/저장하는 on-site 방식이 아니라면 off-site 방식의 충전소는 외부에서 수소를 공급받아야 한다. 대단히 가벼워서 여간해선 액화가 어려운 수소 특성상 압축가스 형태로 운송/저장을 해야 하는데, 수소를 운송하는 튜브트레일러의 대당 저장(운송) 가능한 수소 양은 LNG/LPG에 비해 훨씬 적다. 이는 거리가 멀수록 운송 비용의 비율이 높음을 의미하고, 앞으로 기술/공학의 발달은 운송 방법의 개량을 통해 운송 비용을 낮추겠지만, 근본적으로 기존 연료보다 훨씬 액화가 어려운 수소 특성에 기인하기 때문에 기존의 운송 비용에 비해서는 고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운송이나 직접 수소를 생산하는 on-site 방식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소 저장에 해저 7,000m
압력과 같은 700기압이 필요하다고?
물을 따르듯이 액체 연료를 주입하는 화석연료와 달리 수소 기체의 주입은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소 기체를 받아서 저장하는 수소차에 고압으로 저장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많은 양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 현재 수소차는 수소 탱크에 700bar의 압력으로 저장하는데, 대략 700기압에 해당하는 압력이다. 이 정도의 엄청난 압력은 상상하기 힘든데, 700기압에 해당하는 압력은 대략 깊이 7,000m의 바다 속에서 느끼는 압력과 동일하다. (동해의 가장 깊은 바다도 깊이가 3,000m도 안 된다.)
기체는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700기압의 수소차 수소 저장 탱크로 수소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충전소의 탱크에 더 높은 압력으로 수소가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액체 화석연료를 펌프로 밀어주는 기존 자동차의 충전과는 다르다. 한 번에 대량의 수소 기체를 700기압으로 가압해서 공급하는 펌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수소자동차에 수소를 공급하기 위해 미리 충전소에서 700기압 이상의 압력으로 수소를 가압해서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소 충전소 어플로
혼잡도를 봐야하는 이유는?
수소를 운송하는 튜브트레일러는 200기압으로 수소를 운송하고 공급한다. 튜브트레일러에서 한 번에 공급받는 수소의 양도 적은데 200기압으로 수소를 받으니 충전소는 받은 수소를 충전하기 전에 700기압 이상으로 압축해야 한다. 한 번의 압축으로 700기압을 만들 수 없어서 두 차례 재압축을 한다. 압축을 할 때마다 에너지가 사용되며, 일단 수소차 한 대를 충전하고 나면 충전소의 수소 탱크 압력이 떨어져서 다시 가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수소차 충전 시간이 5분 내외라는 것은 수소 충전소에 적정 압력으로 준비된 수소가 공급 가능 상태로 대기했을 때의 시간인 것이다.
만약 수소차들이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수소 충전을 하려고 하는 상황이면 대당 충전 시간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수소 저장 탱크 하나에 충전을 위한 고압 탱크를 여러 개 연결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비용의 증가로 연결된다. 만약 수소차가 몰려서 더 많은 차량에 수소를 나눠주기 위해 충전소의 수소 탱크 압력을 낮추면 결과적으로 차에 공급되는 연료량은 줄어들게 된다. 이는 주행거리의 감소로 연결된다.
수소 급속 충전 시
충전 온도는 –40℃
수소 기체에 압력을 가하여 부피를 줄이는 과정과 충전 시 수소 압력이 낮아져 부피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가 있다. 기체를 압축하면 온도가 올라간다. 간단히 생각하면 기체가 압축되었다는 것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았다는 것이므로 온도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에어컨 실외기 근처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같은데 일단 사용된 (차가워진) 냉매를 압축시켜서 온도를 올리고, 이 뜨거워진 기체 냉매를 팬으로 식혀 액화시켜서 다시 준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실외기 근처 팬이 돌면서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는 바로 압축을 통해 뜨거워진 기체를 식히는 열기이다.
수소 충전소에서 수소차를 연속적으로 충전하는 경우 충전소의 수소 탱크에 끊임없이 고압의 수소를 준비시키기 위해 압축기가 돌아가고, 압축 과정에서 온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냉각해야 한다.
그래서 수소 급속 충전 시 충전 온도를 –40℃ 정도로 낮춘다. 이렇게 낮은 기체가 이동하는 동안 충전건의 노즐 주변에 성에가 끼고 공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어서 차량에서 충전 노즐을 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또한 지나치게 높은 압력을 가하되 안전을 위해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수소의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이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거나 찜질팩을 사용하기도 하며 노즐 근처에 수분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기 위해 질소 보호막으로 감싸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사례가 과학과 공학, 그리고 기술의 차이와 협업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과학적 이론적 토대가 마련된 상황에서 이를 대량 생산으로 현실에서 구현하는 공학, 그리고 관련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학이 말하는 이론적 기반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공학적 설계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는 저온에 의한 노즐 결빙 문제가 실 사용자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불편함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과학, 공학, 기술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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