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두 얼굴의
탄소 이야기

writer이독실
과학칼럼니스트

탄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10번의 연재로도 모자를 것이다.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된 기후 문제에서 온실가스로서의 이산화탄소부터,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물질이 플라스틱이라는 것에서 시작해도 좋고,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된 석탄과 연료로서의 석유,
인류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철과 그 단짝으로서의 탄소를 이야기해도 좋겠다.
철을 제련할 때도 탄소가 쓰이지만,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철기’는 강철이고, 철기는 탄소 함유량에 따라 강철, 연철, 주철 등으로 그 성질이 크게 달라진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모든 생명체의 근간에는 탄소가 뼈대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해도 좋다. 별개의 키워드로 다뤄도 흥미로울 주제들도 가득한데, 순수한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만 나열해봐도 영원하다는 (그러나 사실 영원하지 않은 지구 환경에서는 숯이 더 안정하므로 결국 다이아몬드는 숯으로 변한다.) 다이아몬드도, 축구공과 꼭 닮은 풀러렌도, 최근 엄청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그래핀도, 그렇게 강하다는 탄소 나노 튜브도, 모두가 익숙한 연필의 흑연도 있다.
키워드만 봐도 짐작이 가지만 사실상 탄소는 우리 우주에서 생명에 있어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명의 시작부터 핵심 역할을 한 탄소는 인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고 산업혁명을 일으켰으며, 현대 물질문명을 지탱하면서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연구가 진행될 최첨단의 소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 몸이, 아니 모든 생명체의 뼈대가 탄소라는 것만 보아도 생명의 핵심 중 핵심이 탄소라는 것은 명백하다.
탄소는 관계를 잘 맺는다
탄소가 이렇게 만능처럼 널리 기능하는 이유는 뭘까? 다양한 화합물을 형성하고 특히 뼈대를 형성하여 거대한 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계’가 중요하다. 혼자서, 둘이, 셋이서만 만족하면 커다란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혼자서는 그렇게 약한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도 집단의 힘이고, 하나하나 개체로는 도저히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없는 호모 사피엔스가 결국 네안데르탈인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고 살아남은 이유도 바로 공동체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들의 유전자의 일부가 우리 안에 살아남았고, 그 유전자가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게 된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탄소도 거대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정확하다. 탄소 원자는 가장 바깥쪽 전자 껍질에 4개의 전자가 있는데, 총 8개의 전자가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정확히 절반의 전자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물이 반 들어있는 물컵마냥 탄소는 전자를 4개 더 받아들이기도, 전자를 4개 다 버리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탄소는 다른 결합을 형성한다. 각각의 전자가 마치 ‘손’처럼 다른 원자들을 잡는다.
탄소 구조
그래서 탄소들은 전체적으로 연결되면서 커다란 구조를 형성하기 쉽고, 이때 탄소가 그러한 뼈대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마치 서로 다양하게 결합할 수 있는 레고 조각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탄소가 몇 개 연결되어 있는지, 전체 모양이 어떠한지, 탄소와 탄소의 뼈대에 붙어있는 다른 ‘팔’에 어떤 원소들이 붙어있는지에 따라 그 성질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게 탄소가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을 지닐 수 있는 이유이다. 이제 돌아가서 앞에서 언급한 흑연, 다이아몬드, 풀러렌, 탄소 나노 튜브 등의 구조를 보자. 탄소가 얼마나 ‘관계’를 잘 맺는지, 그리고 그 관계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구조가 가능한지 이해할 수 있다.
탄소 구조2
모든 생명체의 근간은 탄소이다
이렇게 화학의 세계에서 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다보니 화학 분야에서 아예 탄소를 따로 떼서 연구하게 된다. 과거에는 ‘생명체’의 이루는 물질은 신비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어서 그 분야를 유기화학으로 이름 붙였다. 유기물은 ‘생명력’이 있어야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유기물의 근본은 탄소이며 생명력이라는 신비한 힘이 없어도 만들어질 수 있고 합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전통적으로 불리던 방식으로 유기화학이라 칭하지만, 이제 유기화학의 개념은 달라지고 일부는 폐기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탄소 화합물들이 생명 현상의 결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쯤 오면 생명체의 근본이자 뼈대가 탄소라는 사실은 쉽게 이해가 간다. 생체 분자들은 거대 구조를 이뤄야 한다. 단백질은 아미노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미노산‘들’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미노산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아미노산의 중심에는 탄소가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세포막은 인지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산기가 지방산에 붙어있는 형태이다. 여기서 지방산이 긴 탄소 사슬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생명체의 정보, 구체적으로는 주로 단백질의 설계도를 담고 있는 DNA의 골격은 당-인산 골격인데, 당들은 탄소가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당이란 포도당, 과당, 올리고당 등을 지칭하는 그 당이 맞다. 당은 어디서 만들어질까? 우리가 섭취하는 당들은 대부분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신비한 힘으로’ 만들어내며, 식물이 다양한 형태로 저장해놓은 당들을 다른 생물들이 섭취하여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탄소가 손을 맞잡고 결합을 형성하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결합이 끊어지면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탄소-탄소 결합이 끊어지고 탄소가 산소와 결합할 때 많은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이런 산화 반응이 생물의 에너지원이다. 이렇게 산소와 결합하는 산화가 빠르게 일어나면 연소로, 생물 내부에서 일어나면 호흡이라 불린다.
생명체의 골격과 에너지원, 그리고 호흡 생성물 모두가 탄소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결국 탄소의 순환은 거대한 생명의 순환이다.
잠자고 있던 탄소들이 깨어날 때
연구원 일러스트
과거에 지구에 살았던 수많은 생물들은 죽어서 땅에 묻혀 서서히 그 구조가 변해간다. 산소와 접촉이 차단된 상태로 땅속에 묻혀 압력을 받으면 산화되지 않은 채로 복잡했던 구조가 단순해지는데, 특히 식물 세포의 뼈대인 셀룰로오스(이 또한 당)는 석탄으로, 플랑크톤들의 사체는 석유로 변해간다. 이 석탄과 석유는 생명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복잡한 구조들이 다 사라져있지만 기본적인 탄소 뼈대는 어느 정도 남아있는데, 여전히 탄소-탄소 결합이 있기에 잠재적 에너지가 남아있는 상태다. 인류는 과거의 이 탄소 화합물들을 깊은 곳에서 끄집어내서 다양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연료로, 나중엔 단순한 구조의 그 물질들을 원료로 우리가 원하는 물질들, 주로 플라스틱을 합성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땔감으로 삼던 시절에는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지만 그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의 광합성으로 인해 식물로 순환했다. 물론 언제나 식량과 에너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인류는 생존 자체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의 거대한 눈으로 보면 인류는 제한된 가용 자원만을 사용한 셈이었고, 식량과 에너지의 제한으로 인해 인구는 적절한 수준을 유지했다. 물론 철저히 냉정한 이 문장에는 기근이 닥칠 때마다 아사자가 속출해서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인류는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답을 알아냈다. 땅속에 묻혀있던 과거 생물의 사체들, 즉 석탄과 석유를 이용해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크게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다르게 말하자면 엄청난 에너지원인 석탄의 사용이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표에 있던 탄소덩어리뿐 아니라 땅속에 고이 묻혀 자고 있던 탄소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니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아주 서서히 사용했다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꽤 많은 양이 바다에 흡수되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엄청난 속도로 석탄과 석유를 사용했고, 적어도 수천만 년에서 수억 년을 땅속에서 잠들었던 탄소들을 깨워 공기 중에 흩뿌렸다. 문제는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기체라는 것이다.
보가 터지기 전에 물줄기를 막아야 한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붙잡아 지구에 머무르게 한다. 문제는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이산화탄소가 너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교과서에 대기 중 이산화산소의 농도는 0.3%라고 써있었다. 지금은 이미 0.4%를 넘었다. 산업혁명 이전의 0.28%에 비해 50%가량 높아진 상태인데, 이로 인해 지구의 평균 기온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지구의 평균 기온은 음성 피드백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느 정도 온도가 높아지면 다양한 기작으로 다시 온도가 낮아져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음성 피드백이라고 한다.
그러나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반대로 온도 상승폭이 더 빨라지게 되어 있다. 졸졸 흐르는 약간의 물줄기가 거대한 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어쩌면 ‘봇물 터지듯’이라는 의미에 가장 잘 들어맞는 등골 서늘한 진실이 지구온난화인지도 모른다. 인간 활동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조금 더 더워지는 문제가 아닌, 인류 문명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이러한 지구온 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미 지속되고 있다. 교토의정서, 파리협약뿐 아니라 사실 매년 기후문제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작년 말 26번째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인 COP26이 열렸고, 인류 생존을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공감대로 인해 탄소 감축을 위한 전 지구적 노력을 ‘급하게’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이슈가 있고, COP와 탄소 감축, 탄소 중립 정책과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심지어 국제 문제를 떠나 정의와 윤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모든 생명체의 근간이 되는 탄소가 대기 중 적절한 수준을 넘어갈 때 그 생명을, 정확히는 인류를 위협하는 두 얼굴을 지녔다는 사실은 과학적 사실로 밝혀졌으며 더 늦기 전에, 특정 온도 이상으로 높아져 온난화가 가속화하기 전에, 봇물이 터져 나오기 전에 인류 공동의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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