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gas

TOUCH KOGAS

  • TOUCH KOGAS
  • 36.5℃ 심리학

url 복사 인쇄하기

36.5℃ 심리학


적막하고 고요한 한밤중, 잠에서 깬 후 좀처럼 다시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지금 시각은 새벽 2시, 노르웨이 출장 이틀째 날, 좀처럼 시차적응이 안 된다. 첫날 일정 내내 쏟아지는 졸음을 꾹꾹 참아가며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과 오늘 잡혀있는 중요한 일정이 연달아 떠오른다. 지금 못 자면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될 것이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쉽지가 않다.잠을 자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내가 "어떻게 사람이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느냐"고 신기해할 정도로 불면증 걱정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젊었을 땐 어딜 가더라도 시차 적응도 금방 하고 하루쯤은 꼬박 밤을 새워도 그다지 힘든 줄 몰랐는데, 잠 때문에 이렇게 고생할 줄이야! 옆방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동료의 충고대로 시차 적응을 도와준다는 약이라도 가져올 걸 후회막급이다.
[글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
유지현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공인회계사(AICPA)를 취득했다. 포스코 인사부와 현대건설 재정부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인류학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생물인류학 연구실에서 마음과 행동의 진화에 관해 연구 중이다. [비협력자에 대한 처벌과 평판: 처벌의 비싼 신호 보내기 효과]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인간의 집단 협력과 처벌의 공진화 과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생체 리듬과 면역력

짧은 일정으로 미국이나 유럽처럼 시차가 크게 나는 나라로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한 번쯤 시차 때문에 고생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며칠 동안 잠을 설치고 낮밤이 바뀐 듯한 생활을 하면 몸이 쉽게 지친다. 우리 주변의 모든 환경은 24시간 지구 자전 주기에 따라 변화하며, 우리는 환경의 예측 가능한 변화에 맞춰 생체 리듬을 조율한다. 사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동물, 식물, 박테리아와 균류까지 지구상 거의 모든 생명체는 생명계 진화와 더불어 시작된 고유한 생체 리듬을 가지고 살아간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포스터 교수에 따르면, 우리 몸이 가장 깊은 수면 상태에 빠지는 시각은 오전 2시, 체온이 가장 낮아지는 시각은 오전 4시 30분, 테스토스테론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각은 아침 8시 30분이다. 가장 행동이 기민한 때는 오후 3시 30분, 혈압은 오후 6시 30분에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또 사랑을 나누기에는 밤 10시가 가장 좋다고.

생체리듬은 면역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많은 변수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연구는 대부분 인간 대신 동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우리와 같은 포유류에 속하며, 작고 통제가 쉬운 생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많은데, 결론적으로 감염에 대한 생쥐의 면역 반응이 병원체에 감염된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헌데 생쥐는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다. 따라서 생쥐의 생체리듬상 휴식 시간에 해당하는 오전 10시에 가장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또 활동 시간인 밤 10시에는 면역 반응이 아침에 비해 감소한다. 그렇다면 낮에 활동하고 밤에 휴식을 취하는 인간의 경우엔 어떨까? 사람의 면역계는 밤에 더 강력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억제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낮보다 밤 동안 더 낮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간의 전체 유전자 중 약 15% 정도가 낮과 밤에 따라 다르게 활성화되는 듯하다. 이러 한 활성도 차이는 주로 몸의 신진대사를 조율하기 위한 것이고, 그 결과 면역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생체 리듬과 면역력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간의
전체 유전자 중 약 15% 정도가 낮과 밤에
따라 다르게 활성화되는 듯하다.
이러한 활성도 차이는 주로 몸의
신진대사를 조율하기 위한 것이고, 그 결과 면역계까지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언제부터 밤에 잠을 잤을까

약 6,500만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최초의 영장류 조상, 플레시아다피스는 생김새가 다람쥐와 비슷하다. 5,500만~3,400만 년 전 무렵 이오세 시기에 영장류는 크게 주행성인 아다피드과와 야행성인 오모마이드과로 나누어졌다. 아직 이들과 현대 영장류의 계통 발생적 유인관계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주행성인 아다피드가 영장류의 조상이라면 우리는 약 5천만 년 이상 밤에 자고 낮에 활동하는 생체 리듬에 적응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무튼 이렇게나 유서 깊은 생체 리듬이니 시차 적응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밤이건 낮이건 한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잠을 자지 않고 버티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 몸에 피로가 누적되면 뇌에서 아데노신이란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아데노신이 신경세포의 아도노신 수용체에 달라붙으 면 서서히 두뇌와 근육 간 소통이 느려져 움직임이 둔해지고 졸립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차량 충돌사고 등 대형 교통사고나 근로 중 사고는 밤 시간대에 더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잠을 자는 것도, 잠을 쫓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잠을 못 자면 생기는 일

밤마다 잠과의 전쟁을 벌이는 사람은 불면증 환자만이 아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가장 고난이도 미션 중 하나는 밤에 안 자려고 버티는 아이를 제때 재우는 일이다. 맨 처음 아기가 태어나면 초보 부모의 소원은 아기 가 유창하게 말하는 것도, 씩씩하게 걷는 것도, 유달리 발달이 빠른 것도 아니다. 그저 밤에 2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배고프다며 울지 않고, 어서 빨리 아침까지 통잠을 자게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기쁨의 그 날은 운이 좋으면 100일 무렵에, 운이 없으면 2~3년 후에나 온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이제는 몇 시에 잠자리에 들 것인지를 두고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처음에는 잠자기 전에 책을 한 권만 더 읽어 달라며 애간장 녹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부모를 무장해제 시키지만, 곧 휴대전화, 게임으로 밤을 새우면서 왜 꼭 자야 하냐고 쏘아붙일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알아두자. 잠을 못 자면 무슨 일이 생길까? 의료심리학자인 틸 뢰네베르크의 말에 따르면, 잠의 기능은 우리가 잘 깨어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앞서 숙면이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한 바와 같이,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 한 연구에서 총 수면시간이 7시간 미만인 사람은 8시간 이상인 사람보다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약 3배 정도 높았다. 수면은 학습 능력 향상과 기억력 강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 실험에서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주어진 과제를 하는 과정에서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또 수면은 정서와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면장애는 감정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고 이에 따라 다양한 정신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불면증과 관련된 정신 장애 중 우울증이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우울증 환자의 무려 90%가 깊이 잠들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학습이니 우울증이니 하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시큰 둥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잠이 부족하면 비만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일례로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켈리 바론 교수의 연구에서 BMI가 높은 사람일수록 수면시간이 짧고, 밤늦은 시간에 잠이 들며, 오후 8시 이후의 칼로리 섭취가 많았다. 또, 앞서 언급한 면역과 관련된 호르몬과 마찬가지로 성장 호르몬의 2/3는 밤에 잠을 자는 동안 분비된다. 성장 호르몬 주사는 보통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놓는다. 잠을 자는 것 자체가 성장호르몬이 원활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아이들도 수긍하고 침실 불을 끌 것이다. 아, 그런데 너무 많이 자는 것도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한다. 보통 건강한 성인에게 권장 되는 적정 수면시간은 하루 중 최소 7시간이다. 오히려 8시간 이상 너무 오래 자는 것은 수면 스케줄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숙면을 향한 첫 걸음이다. 주말이라고 너무 예외를 두지 말 것.

금요일 밤에 친구들과 밤새도록 놀고 나서 토요일 낮에는 내내 자고 일요일에는 잠이 안와서 뜬눈으로 누워 월요일 출근 걱정을 하고 싶지 않으면 주말에도 어느 정도 수면 스케줄을 지키도록 노력해 보자. 그리고 침대에서는 가급적 잠만 자는 것이 좋다. 몸이 침대를 자는 곳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제발 침대에서만이라도 스마트 폰은 내려놓고 당신의 몸이 당신이 자는 동안 해야 될 일을 할 시간을 주는 건 어떨까?

잠과 관련된 흥미로운 영화 셋

4인용 식탁

결혼을 앞둔 '정원'은 지하철에서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신혼집 식탁에서 아이들의 귀신을 보게 된다. 악몽과도 같은 그의 일상은 공포로 변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쓰러지듯 잠드는 기면증을 앓는 '연'이라는 여성을 알게 되고, 그녀도 자신처럼 혼령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겪는 공포의 비밀을 풀어줄 것이라 직감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정원은 그녀를 통해 오히려 잊고있던 무서운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수면의 과학

여섯 살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스테판은 부친의 죽음으로 멕시코에서 모친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이사를 오게 된다. 달력 제작회사에 취직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스테판의 옆집에 스테파니가 이사를 오게 되고, 스테판은 이름도 비슷한 그녀에게서 운명을 느끼게 된다. 그녀역시 기발한 상상력을 지닌 그에게 호감을 느껴 만남을 이어가지만 서로를 알아갈수록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인셉션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특수 보안요원 코브. 그를 이용해 라이벌기업의 정보를 빼내려는 사이토는 코브에게 생각을 심는 '인셉션' 작전을 제안한다. 성공 조건으로 국제적 수배자가 된 그의 신분을 바꿔줄 것을 약속한다.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코브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표적인 피셔에게 접근해 인셉션을 실행하려 하지만 뜻밖의 사건들과 마주치게 된다.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이 작전은 이번에도 실패로 끝날까?